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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일, 자네 연인이 있던가?”

 

“아뇨, 없습니다만.”

 

“좋아. 그럼 케일, 나와 결혼하지 않겠어?”

 

케일은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혹은 휴식을 취하지 못한 탓에 귀에 이상이라도 온 것이 아닌지 확인해야만 했다. 그게 아니라면 사랑하는 연인들이나 하는 달콤한 청혼의 말을 저 상대에게서 들을 리가 없으니까. 그것도 자신이.

 

“흠…, 너무 이른가? 그럼 연애부터 하는 건?”

 

멈칫하며 당황하는 케일의 표정을 살핀 알베르가 선심을 쓰듯 말했다.

 

“저하,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와 결혼하지 않겠냐고 물었네만.”

 

“.... 혹시 미치셨습니까?”

 

“자네 그거 불경죄야.”

 

케일이 보기에 저 왕세자는 불경죄라고 하면서도 꽤 기분이 좋은 듯 보였다. 뭐가 저렇게 신났는진 모르지만, 알고 싶지도 않다.

 

“왜 저입니까.”

 

케일이 떨떠름한 표정을 미처 가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되물었고 이내 들려오는 대답에 굳어지는 표정을 애써 피며 말했다.

 

“그야 내가 자네를 사랑하기 때문이지.”

 

“장난이라면 재미없습니다만.”

 

“아쉽군, 난 나름 진심인데 말이지. 알겠네.”

 

이어지는 알베르의 말을 들은 케일은 그래도 어느 정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전쟁이 끝난 후 케일, 은빛 공자의 명성은 이미 누군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떠올랐다. 전쟁 중 피를 토하는 자신보다도 병사들의 밥을 중요시한다는 케일의 소문을 들은 사람 중 누구도 감히 케일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케일의 명성이 하늘을 뚫을 정도로 치솟으니, 케일이 로운을 구했다는 것과 별개로 혹여 케일의 힘과 욕심이 커질까 불안해진 높은 자리의 귀족들이 알베르에게 슬쩍 권유로 감싼 불안을 계속 토해낸 것이다. 케일 헤니투스와 국혼을 하는 게 어떻냐고. 케일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빼앗길 수 있는 자신들의 자리가 두려워 아예 넘보지 못하게 케일에게도 큰 자리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고작 결혼하자는 그 말에 좋아하는 인형을 선물 받은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좋아지다니, 한심하네.’

하. 낮은 한숨을 쉬는 케일을 바라본 알베르는 이 모습을 감상하는 중이다. 자신만큼 상대에게 표정 연기 하나는 제대로 하는 케일이 이렇게 기분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오랜만인 탓일까, 그 모습을 본 게 오직 알베르, 자신뿐이기 때문일까. 알베르가 웃음기 담긴 말투로 말했다.

 

“그렇게 싫으면 거절하지 그러나.”

 

“애초에 거절할 수 있기나 합니까?”

 

“자네가 나 대신 그들의 상대가 되어준다면야.^^ 물론 다른 방법도 있네. 자네가 권력에 관심이 없다는 걸 그들에게 인식시키거나. 하지만… 귀찮지?”

 

“.... 귀찮죠. 일단, 지금 대답을 드리기엔 너무 갑작스럽습니다. 적어도 생각 정리할 시간은 주시죠?”

 

이에 화답하듯 알베르는 배부른 미소로 답했다.

 

“좋네. 일주일 주도록 하지. 충분한가?”

 

“그 정도면 충분하네요. 그럼, 이만.”

 

케일은 자신을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는 저 얼굴에 지금이라도 불경죄라 불릴 법한 말을 내뱉고 싶은 것을 꾹 참은 채 텔레포트로 들어가기 전 뒤를 돌아 생긋 웃었다.

 

“아, 저하.”

 

“왜 그러지?”

 

“청혼하시려면 제대로 하셔야죠. 반지도 없이 청혼하시다뇨, 실망입니다. 참고로 전 최고로 비싼 반지가 좋더군요. 그럼 로운을 비춰주시는 별이자 자랑이신 왕세자 저하의 안목을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라지는 시야 사이로 알베르의 멍한 표정이 드러났다.

‘하! 한 방 먹었군.’

‘최고로 비싼’을 강조하는 케일의 모습이 자신이 황금패를 건네줄 때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물론 케일이 말하는 최고로 비싼 반지는 알베르의 책상 오른쪽 서랍에 아주 잘 있다. 오늘 케일에게 주려 했던 반지는 청혼을 담은 가벼운 질문을 하자마자 달아오르는 얼굴과 흐르는 식은땀과 쿵쾅거리며 울리는 심장을 자제하기 위해 애쓰는 알베르에 의해 케일의 손에 들어가지 못했다. 케일이 이를 알았다면 그의 손에 들어오지 못한 반지를 아쉬워했겠지.

 

‘돌겠네.’

언젠가부터 케일을 만날 때마다 반응을 보이는 자신의 몸에 알베르는 굉장히 곤란했다. 아마 이 감정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아는 자신이기에 더 그럴 것이다. 사실, 청혼한 것은 충동적이었다. 전날 귀족과 대신들에게 결혼 제안을 들던 알베르는, 케일이 다른 사람과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다 결국 자신이 아끼던 펜을 부러뜨리고 말았고. 가지가지 한다는 타샤의 눈총을 받으며 알베르는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일은 그 감정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한편, 텔레포트로 이동하던 케일은 주위의 분위기가 가라앉는 걸 느꼈다. 사실 귀족들에게 인식시키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국혼보다도 덜 귀찮고. 그런데도 왕세자의 물음에 바로 그리하겠다 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국혼이라는 귀찮음을 감수하고도 남을 만큼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겠지.

 

언제부터였는지 되짚어가기에는, 긴 시간을 함께했다. 자신과 동류이기 때문일까.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던 그 가면이 자신 앞에서는 금방 무너져내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닌 척 건네는 걱정하는 말을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었고 가식적인 말을 내뱉을 때마다 구겨지는 저 미간을 만지고 싶었다. 이 모든 걸 자각했을 때엔 그의 색으로 물드는 중이었고, 케일은 굳이 그걸 자신의 색으로 돌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자신이 그의 색으로 물드는 만큼, 그도 자신의 색으로 물들었을 테니. 그러면서도 물드는 영역을 넓히지 않으려 했다.

 

물든다 해도 변하는 것은 없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서로의 색은 다시 자신의 색을 찾을 것이라 믿었기에. 좋아한다는 감정이 생기면서 모든 것에 예민해진 케일은 자신과 왕세자를 서로를 향한 감정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모를 수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미묘하게 변했다. 힐끔힐끔 얼굴을 쳐다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렇지만 마음은 편했다. 자신이 아는 왕세자 알베르 크로스만은 이성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철저한 사람이니까. 그는 로운왕국을 위해 국왕이 된 후 사랑하지 않더라도 국혼을 하고 후계자를 낳을 것이다. 그 계획적인 생각에 자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 고작해야 결혼식의 하객 정도? 딱 그 정도가 좋다.

욕심을 낼수록 물드는 곳만 늘어나고 자신의 색으로 덮는 것도 한계가 있을 테니까.

 

‘분명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왜 일이….’

이렇게 된 거지. 깊은 한숨을 내쉬는 얼굴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 얼굴이 아무 말 못 하는 모습이라도 봐야겠어.’

청혼할 때 알베르의 마치 오늘 밥 챙겼어? 라는 말을 하는 듯한 평온함에 결국 케일만 놀아났다. 마지막에 되돌려 주기는 했지만, 곧 죽어도 선빵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은 그 선빵을 놓고 반응을 살필 것이다. 나쁘지 않은 생각과 기대되는 반응에 케일은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선빵을 위해 케일은 알베르에게 영상통신을 걸었다. 이쯤 되는 타이밍에 얼굴 한 번 비춰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로운의 아름다운 별이자 자랑이신 저하, 대답은 며칠 후 열리는 축하연회에서 하겠습니다. 그럼, 그때 뵙죠.”

 

말이 끝나자마자 끊겨 버린 영상통신에 멍한 건 알베르였고 뒤이어 절망했다.

‘축하연회까지 앞으로 나흘…. 나흘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니. 나를 피 말려 죽일 셈인가, 케일?’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막상 얼굴 한 번 봤다고 좋은 것인지 웃음이 올라오는 걸 참으려 애를 써야 했다.

 

흘러가는 나흘 동안, 두 사람의 패턴을 비교해보자면.

먼저, 케일은 평소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다만 얼굴에 조그만 웃음이 걸려있다는 점? 그것을 제외하고는 평온한 백수의 삶을 보냈다. 연회 당일, 검은색을 바탕에 화려하게 붉은 장신구가 달린 옷을 보며 케일은 애써 얼굴을 펴야 했다. 내가 굳이 이런 옷까지 입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내뱉을 수가 없었다. 론에게 먼저 화려한 옷을 준비해 달라고 한 건 다름 아닌 케일, 자신이었으니까. 마지못해 옷을 입고 리본으로 머리를 묶은 케일은 다른 이들의 눈을 이끌었다. 이에 만족한 케일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어린 왕세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편 알베르는 나흘이라는 시간을 잘 보낼 수 없었다. 잊을 틈도 없이 떠오르는 케일의 생각에 서류에 잉크가 번진 게 한두 번이 아니며 회의에 집중도 못 하고 있었다. 케일의 대답이 궁금하면서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과 붙어서 웃고 얘기하는 모습을 떠올릴 때면 이유도 모른 채 속이 차게 식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질투’라는 감정이라기엔 그 범위가 너무 넓었다. 케일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곁에 서 있기만 해도 차게 식는 걸 느꼈으니. 아직 알베르는 이 감정에 이름을 내리기 어려웠다.

 

무의미한 시간이 흘러 당일, 알베르는 시선이 저절로 가는 화려함을 몸에 둘렀다. 그렇다고 다 자기 스타일을 내뿜는 게 아닌 묘하게 어울려 알베르의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도와주었다. 머리는 깔끔하게 넘겨 얼굴을 시원하게 드러냈다. 준비를 마친 알베르에게 케일을 기다리는 시간은 1초가 한 시간 같았다. 초조했던 시간 뒤 텔레포트 사이로 보이는 실루엣은, 케일이었다.

 

“저하.”

 

“.... 케일.”

 

성큼 다가오는 케일의 걸음엔 망설임이 없어 보였고 이것이 알베르를 더욱 긴장하게 했다.

긴장하는 왕세자와 달리 케일의 속은 한 생각으로 가득해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후진은 없다. 오직 직진이다.’

 

속으로 되새기는 말은 알베르에게 닿을 일이 없었고 마침내 케일이 알베르의 코앞에 멈췄다.

자신보다 조금 더 높은 푸른 눈을 바라보며 케일이 움직였다.

 

“이게 제 대답입니다, 저하.”

 

무어라 말하려던 순간 케일이 알베르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선 닿았다. 말랑한 무언가와 입술이. 이어지는 행동에 알베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볍게 맞물린 입술은 촉 소리를 내며 아쉽게 떨어졌다.

가벼운 정적이 흐른 후 케일이 물었다.

 

“이 정도 대답이면 충분합니까?”

 

충분했다. 아니 오히려 차고 넘칠 정도였다. 붉어진 상태 그대로 굳어버린 알베르의 얼굴에 케일이 만족한 듯 웃었다.

 

“전 먼저 연회장에 가 있겠습니다. 잘 추스르고 오세요, 저하. 높으신 분들 앞에선 제대로 가면을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톡톡, 알베르의 어깨를 털어주던 케일이 얼굴을 마주 보며 싱긋 웃었다. 그에 알베르가 삐걱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케일이 나간 알베르의 집무실엔 빨갛게 익은 왕세자만이 자리했다.

‘돌겠네, 진짜.’

차마 손질한 머리를 쓸어내리진 못한 알베르는 단단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차라리 연회를 빨리 끝내고 케일과 시간을 보내야겠어.’

알베르는 굳게 다짐을 한 채 케일이 있을 연회장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쏟아지는 시선은 언제나 받던 것이기에 익숙했다. 바라보는 시선들 사이로 알베르는 빠르게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았다.

 

‘역시, 저기 있군.’

케일은 연회장에 올 때마다 귀찮다는 걸 얼굴에 드러내며 구석진 곳에 가 술을 홀짝이곤 했다. 오늘도 그러려나 싶더니 역시였다. 알베르는 준비된 자신의 자리에 앉으면서도 시선의 끝은 쭉 케일을 향했다. 자신의 시선을 눈치채고도 남을 정도면서 눈 한 번 마주치지 않는 케일이 야속했지만. 사람들을 대하면서도 온 신경이 한 곳에 쏠려 있던 알베르는 무언갈 느낄 수 있었다.

 

케일에게로 돌린 시야에 보이는 건 다름 아닌 젊은 영식이었다. 케일이 바로 보이지 않자 알베르의 표정에 금이 갔다. 저 영식은… 마르프로 영식. 유난히 더러운 소문을 가진 영식이었는데.

‘저 영식이 케일에겐 왜?’

의문이 풀리는 건 금방이었다. 마르프로 영식이 케일의 손을 덥석 잡더니 살살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이에 케일의 표정이 썩어만 갔다. 마르프로 영식은 그걸 모르는지 멈추지 않고 케일에게 점점 몸을 붙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피가 식는 걸 느낀 알베르는 주저하지 않고 케일에게 다가가 그의 앞에 선 영식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영식, 케일을 좀 빌려야겠어.”

 

“저하?”

 

“자네는 날 따라오기만 해.”

 

놀란 듯 자신을 돌아보는 케일에 알베르가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들려오는 마에프로 영식의 목소리에 싸늘한 표정으로 마르프로 영식의 눈을 마주쳤다.

 

“하, 하지만 저하…! 케일 공자님과는 제가 먼저…!”

 

“방금 뭐라 했나, 영식?”

 

“히익.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쯧, 줄행랑을 치는 영식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찬 알베르는 케일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빨라지는 걸음 속 알베르의 안은 이리저리 뒤엉켜 있었다.

 

알베르 크로스만은 오직 그만이 볼 수 있는 케일의 얼굴 속 진짜 생각이 좋았다. 눈이 마주치면 딱히 다른 말 필요 없이 통하는 서로의 생각에 즐거웠다. 자신을 불경한 태도로 대하면서도 아슬아슬 선을 넘지 않는 그 행동이 좋았고, 케일의 모습 하나하나 전부 그에게만 보여주는 것이길 바랐다. 본인이 아닌 누군가와 공유하는 걸 바란 게 아니었다. 그는 그제야 이 느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아아, 그래. 나는 케일을, 케일 헤니투스를 소유하고 싶은 거구나. 케일을, 나만의 케일로…….

 

“저하? 저하, 어딜 이리 급히 가시는 겁니까. ”

 

숨이 차오른 듯 거친 숨소리에 알베르의 정신이 돌아왔다. 순간 뇌를 거친 소름 돋는 생각과 끈적하게 달라붙는 소유욕에 입술을 짓물은 알베르는 이내 익숙한 문 앞에 멈췄다.

 

“여긴, 저하의 방 아닙니까.”

 

“일단… 일단 들어오게, 케일.”

 

탁, 사라지는 문틈 사이 빛과 함께 알베르의 빛도 사라졌다. 그런 알베르를 바라보는 케일의 눈빛도 한층 가라앉았다.

 

“저하, 무슨 일이십니까, 도대체.”

 

“날 무서워하지 말게, 케일.”

 

“네? 그게 무슨.”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조금 짜증이 담긴 케일의 말을 삼키며 알베르가 말을 이었다.

 

“.... 케일, 나는… 난 자네가 나를 위해 웃고 손짓 하나하나 모두 나만을 위해 움직이길 바란다네. 자네의 시선은 나만을 담고 자네를 바라보는 모든 시선 사이에서 꺼내 가두고 싶어. 연회에 있을 때 자네에게 다가와 손을 잡는 그 손목들을 자르고 자네의 웃음을 봤다며 기뻐하는 그 같잖은 얼굴에 비수를 꽂아버리고 싶어. 하지만….”

 

“.... 저하?”

 

케일은 이내 손에 얼굴을 파묻은 알베르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아 내렸다. 그리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 표정에 몸이 굳었다.

 

“이런 내가 무섭나, 케일? 한 왕국의 왕세자로서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해?”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눌러 낮은 목소리로 알베르가 물었다. 케일은 울음기가 있는 목소리를 향해 조심히 걸음을 옮기며 되물었다.

 

“저하께선 제가 그렇다 대답하면 저에 대한 마음은 놓으실 겁니까?”

 

“나는….”

 

맑았던, 잠시 탁해진 푸른 눈동자를 직시하며 케일이 말했다.

 

“아뇨, 저하는 놓지 못하십니다.”

 

말을 멈추고 다가온 케일은 알베르의 한쪽 뺨을 감싸고 눈을 마주쳤다. 말랑한 감촉이 알베르의 눈가를 위로해주듯 지나갔고 눈에 담기는 붉게 타오르는 얼굴에 케일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야 이미 절 사랑하잖아요, 알베르.”

 

눈동자에 비친 케일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방금까지 자신을 바라보던 그 눈을 한껏 접고. 이에 알베르는 머리를 헝클이며 시선을 돌리려 애썼다.

 

“하… 돌겠네. 맞아, 자넬 사랑해. 그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너무 커졌지. 그렇기에 더욱 이 생각을 언젠가 자네가 지친 모습을 하고 날 바라볼까 두려워.”

 

“흠… 그게 다인가요? 그렇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저하가 저를 안아주시면 되겠네요. 싫은가요, 알베르?”

 

케일은 자신을 마주치지 않는 시선을 움직이기 위해 알베르의 목에 팔을 걸며 그의 넓은 품에 자신의 몸을 가까이 붙여 움직였다.

 

“케일, 난… 자넬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

 

하, 짧게 웃음이 섞인 숨을 내뱉은 알베르는 한결 가벼워 보이는 얼굴을 하며 붙여오는 케일의 몸을 단단한 팔로 감싸 안았다. 알베르의 얼굴을 매만지던 케일이 속상하다는 듯 말했다.

 

“얼굴이 이게 뭡니까, 안 그래도 탐나는 건 얼굴밖에 없는데.”

 

퉁명스러운 케일의 목소리에 알베르가 웃음을 머금고 입을 맞췄다. 혀를 뒤엉키며 길게 이어지는 입맞춤에 케일은 숨이 벅찬지 가까이 있는 어깨를 밀려 애썼다. 전혀 밀리지 않았지만.

순간처럼 느껴졌던 입맞춤이 잠시 멈췄을 때 알베르는 자신을 케일의 색으로 한껏 물들인 채 물었다.

 

“정말 케일, 내가 널 사랑해도 괜찮을까?”

 

“그럼요. 온 맘 바쳐 사랑하고, 온몸 바쳐 사랑해 주세요, 알베르.”

 

“케일 자네가 원한다면, 기꺼이.”

 

서로의 대답에 만족한 듯 다시 맞춰지는 입맞춤은 떨어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해가 지고 어둠이 스며드는 밤, 온전히 서로의 색으로 물드는 순간. 뒤섞였던 색들은 제자리를 찾아가듯 조용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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