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은 개는 밤하늘의 끝자락을 닮았다. 은하수가 흐르지 않아 눈동자는 심연보다 까맣고, 윤기 없이 거친 털은 폭풍우의 구름이었다. 케일은 악몽조차 쫓아버릴 것처럼 날카롭게 이빨을 드러내는 개가 최한 같다고 생각했다. 성문에서 딱 백 걸음 떨어진 성벽. 그는 그때와 달리 취기라고는 하나도 오르지 않은 멀쩡한 얼굴로 검은 개와 마주했다. 밤이 너무 깊어서 빛이 닿지 않는 건지 그 개가 너무 검어서 빛을 삼키는지.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검은 개는 미약한 숨을 이었다. 케일은 굳이 최한을 부르지 않았다. 최한도 굳이 케일에게 묻지 않았다. 다만 케일이 망설임 없이 개를 두고 돌아갔을 땐 작게 웃고야 말았다.
“데려가서 밥 먹여.”
최한은 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보였던 맹렬한 기세는 금세 어디론가 흩어져버렸다. 검은 개는 이제 그에게 다정히 대해주는 가족에게 이빨 대신 꼬리를 흔들었다. 새 식구가 들어오는 데에 익숙해진 헤니투스 가는 하나같이 개를 반겼다. 이제 평균 9세를 넘긴 아이들은 매일매일 활기차게 뛰어놀았고, 한스는 살이 오른 개를 자주 껴안아주었다. 개를 살찌운 게 끼니마다 먹이는 스테이크인지 넘치는 사랑인지 모를 정도였다. 물론 두 발로 서면 최한과 얼추 비슷한 덩치도 신경 쓰지 않는 이들이 그런 걸 따지진 않았다. 그들은 그보다 검은 개가 누구를 더 좋아하는가에 관심을 두었다. 최한은 자신을 닮은 개가 비크로스에게 재롱을 피우는 모습을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화기애애한 소식이 누구에게나 닿지는 못했다. 특히나 즉위식을 눈앞에 둔 왕세자라면 더더욱. 알베르는 기가 막혀서 시선도 돌리질 못하고, 통신구 너머를 보았다.
“자네에게 그런 취향이 있는 줄은 몰랐군.”
검은 털과 순진무구한 표정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 있는 케일 헤니투스를 보자 제 볼을 꼬집고 싶어졌다. 그간 다져진 왕세자로서의 감이 이건 얽히면 귀찮은 일이라고 경고했다. 차라리 실수인 척 통신구를 깨트려버릴까? 알베르가 진지하게 그런 걸 고민하는 중, 케일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검은 개는 두 사람의 고뇌 따위는 하나도 모르고 그저 환히 웃었다.
알베르는 진심으로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최한이 어째서 옷도 제대로 걸치질 않고 케일의 볼을 열심히 핥아대는지. 애초에 왜 통신 중에 뒤에서 케일을 덮쳤는지. 저 목에 있는 붉은 목줄은 뭔지. 정말 조금도 알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평생. 그러나 늘 그러듯이 세상만사가 항상 뜻대로만 될 수는 없었다.
“최한과 개의 몸이 바뀌었습니다.”
“그… 아니. 조용히 있기로 하지.”
케일의 표정을 본 알베르가 그냥 입을 닫았다. 그동안 케일은 최한을 떼어놓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하필이면 상대가 누구인가. 로운의 최연소 소드마스터가 아닌가. 나날이 근육이 빠지는 저와는 달리 단단한 팔이 꿈쩍도 하질 않았다. 우선 침 범벅이 된 볼을 대충 손등으로 문질러 닦았지만, 최한이 곧바로 다시 핥아왔기 때문에 그다지 소용은 없었다. 절로 한숨이 나오려는 순간, 검은 형상이 순식간에 최한에게 달려들었다. 우당탕! 큰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케일은 날리는 먼지가 햇빛에 반짝이는 꼴을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그 아래서 최한과 검은 개가 뒤엉켜 바닥을 뒹굴었다.
검은 개와 최한의 몸이 바뀌었다. 정확히 닷새 전부터, 식사하던 도중 최한이 그릇에 머리를 박은 게 그 시작점이었다. 깜짝 놀라서 뛰는 검은 개를 두고 그들은 황급히 에르하벤을 찾았다. 처음엔 혀를 차던 에르하벤은 곧 웃기 시작했고 나중엔 케일만을 남기고 다 나가라 일렀다. 검은 개는 고대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알베르 크로스만이 한때 갖고 있었던 것처럼 딱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몸을 바꾸는 힘이었다. 라온이 종종 그와 같은 냄새가 난다고 하더니 이걸 뜻한 거였나. 그러나 그런 이야기뿐이라면 굳이 그만을 남겨둘 필요도 없었다. 에르하벤은 태연히 말을 이었다. 돌아오는 방법은…….
그 느긋한 목소리를 듣고서, 케일은 자신의 비밀을 들켰다는 걸 깨달았다. 고룡은 자신을 속이려면 천년은 이르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케일 헤니투스는 최한을 사랑한다.
그건 아마도 짝사랑이라 칭해야 할 감정이었다. 그는 최한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고 세간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을 짝사랑이라 부르니까. 하지만… 짝사랑 상대가 개가 되면 어떡하지? 케일은 그 답을 몸소 체험 중이었다.
알베르는 개와 개의 싸움에 말을 잃은 지 오래였다. 절박해 보이는 검은색 개와 달리 최한은 뭐가 좋은지 그가 본 적 없는 밝은 미소로 몸을 비틀어댔다. 그사이 케일은 흐트러진 옷을 겨우 추스를 수 있었다. 그나마 사람의 몸이라 발톱에 옷이 걸려 헤지거나 하진 않으니 다행이었다. 두어 번 목을 가다듬자 알베르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글쎄, 침착했나? 오히려 화사하게 눈을 휘기까지 했다. 케일은 알베르가 그렇게 웃을 때가 언제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라온도 알고 있을 것이다.
“즐기는 것도 좋은데 너무 무리하지 말게. 일주일 후 연회 참석. 기억하고 있지?”
그리고 알베르는 마침내 통신을 끊는 데에 성공했다. 쓸데없는 장면을 보게 한 복수일 게 분명했다. 빌어먹을 왕세자. 케일은 억울할 뿐이었다. 저가 원해서 보여준 것도 아닌데 이렇게 놀려먹는단 말인가. 즐기기는 개뿔. 이를 갈다가 고개를 돌리자 순식간에 방 안이 조용해졌다. 검은 개가 된 최한이 끝내 소드마스터의 육체에 패배한 것이다. 본래 자신의 몸에 뭉개져 혓바닥을 길게 내빼고는 헉헉대는 모습이 짠하기 그지없었다. 검은 개는 뭐가 좋다고 눈이 마주치자 또 활짝 웃었다. 엉덩이에 꼬리가 달려 있다면 필시 이리저리 흔들렸을 테다. 케일은 이마를 부여잡은 손을 떼고 제 옆을 톡톡 두드렸다.
“최한. 이리와.”
잠시 낑낑댄 최한이 힘없이 소파 위로 뛰어 올라왔다. 그다지 익숙하지 않을 텐데도 군더더기 없는 몸짓이었다. 최한은 가리킨 대로 옆에 자리를 잡고서는 고개를 떨구었다. 검은 털이 덮인 귀를 축 늘어트리는 모습이 퍽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케일은 손바닥에 이제는 꽤나 부드러워진 감촉이 닿고서야 자신이 최한을 쓰다듬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개와 몸이 바뀌었다고 해서 최한이 개인 것은 아닌데. 좀 그런가? 잠시 최한을 살핀 케일은 마저 그를 쓰다듬었다. 꼬리가 붕붕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 역시 제일 큰 문제는 자신이다.
*
한낮의 정원에 햇볕이 쏟아 내렸다. 느리게 연주되는 첼로를 따라 케일은 빙글빙글 춤을 추었다. 따듯한 바람이 주위를 감싸고 닿은 발걸음에는 봄이 묻어났다. 그 노랗고 푸른 세상 한가운데에서 검은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흩날렸다. 짙은 검정이 마치 유성우가 떨어지는 밤하늘처럼 포근했다. 온기에 취해 그는 하염없이 머리카락 끝만 좇았다. 그런 케일을 보며, 최한은 그저 웃어주었다. 다정한 침묵이었다. 봄의 끝을 맞이할 세상이, 그를 중심으로 도는 세상이 마치 왈츠와도 같다고. 케일은 답지 않게 그런 감상을 품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라고 그랬던가. 이 지독히도 흔한 문장에 안심하고 마는 자신이 어색했다. 그는 사랑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사실은 사랑이 아닌 것을 무어라 정의하기 어려워 그리 부르는 걸지도 몰랐다. 그러나 최한을 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촌스러운 한 마디가 머릿속을 맴돌고 마는 것이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뭔데? 최한이 나를 바라보며 짓는 저 표정이 사랑이 아니라면 뭔데? 저와는 달리 아릿하고 풋풋한 감정은 때때로 눈을 마주치기 힘들게 만들었다. 케일은 에르하벤이 어째서 자신에게만 몸을 되돌리는 방법을 알려주었는지 눈치채고 말았다. 고대의 힘을 풀기 위해서는 반드시 눈물이 있어야만 했다.
“남이 하는 꼴 보느니 내가 울리는 게 낫지. 안 그래?”
분하게도 그 말이 맞았다. 원래부터도 선을 확실히 긋는 케일은 특히 사랑에 관해서는 자신이 어디까지 유치해질 수 있는지를 실감했다. 케일은 최한의 사랑은 받아주지 않으면서 그 자체는 씹어 삼키고 싶어 했다. 심지어는 그가 모르는 최한까지. 모든 것을 잃고 영웅이 된 최한마저도. 가끔은 처음 최한에게 그냥 맞아줄 걸, 하고 느긋이 상상해보기까지 하는 것이다. 가령, 케일은 제게 진심으로 화가 난 최한이 보고 싶었다. 눈살이 찌푸려지도록 쓰디쓸 게 분명하나, 어쩔 수 없다. 때로는 알면서도 입에 넣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진짜 케일 헤니투스도 아는 것을 자신은 모른다는 게 속이 쓰렸고, 그렇다고 해서 어린 애 상처를 긁어놓을 수는 없었다. 케일은 문득 그날의 케일 헤니투스가 부러워지고는 했다. 최한이 구해준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런 진득한 감정이었다.
열기를 담은 바람은 온데간데없고 남은 건 새벽의 찬바람이었다. 어린아이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케일은 잠에서 깼다. 눈을 떠도 어차피 깜깜한 새벽이라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 그런데도 구태여 보이지 않는 시야를 더듬어가며 손을 뻗자, 어둠에 폭 파묻혀 윤곽만 흐릿하게 보이는 머리가 닿았다. 무심코 나오려는 한숨을 눌러 삼키고 부드럽게 최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큰 침대에 고양이 둘, 용 하나, 사람 하나, 그리고 개 하나라니. 마치 푹신한 천이 깔린 섬에 표류하는 기분이었다.
최한과 몸이 바뀐 개는 뜻밖에도 케일의 껌딱지가 되었다. 온종일 케일의 뒤만을 졸졸 따라다녀서 비크로스는 최한의 몸이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 안도했다. 그도 검은 개를 좋아하지만, 몸이 최한이라면 상황이 아주 달라졌다. 요 며칠 저보다 키가 큰 개 두 마리에게 시달린 케일은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비록 최한이 머리로 비크로스를 들이받는 걸 모른 척하긴 했어도 말이다. 무엇보다 개가 그토록 케일을 따라다니는 이유가 몸 주인의 영향을 받아서라고 하기에. 실로 만족스러운 기분이라 결국 침대에까지 개를 들여 버렸다. 그렇게 눈을 감으면 늘 같은 꿈이 이어졌다. 정원. 첼로. 왈츠. 그리고 최한.
다 그놈의 연회 때문이었다. 반드시 참석을 해야 하지만, 춤을 안 추기에도 눈치가 보이고 누구랑 추기에도 스캔들이 날 자리. 그리고 최한은, 선뜻 파트너를 하겠다고 손을 들어버렸다. 일순 머리가 하얗게 휘발되었다. 인정하기 싫어도 영웅과 영웅이 춤을 춘다니 그림은 좋았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는 뜻이다. 최한도 영리하니까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냥 케일이 다른 사람과 춤을 추는 게 보기 싫었을지도 모르고.
그러나 생각해보면 최한이 사교댄스를 출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남이 최한을 울리는 꼴을 보지 못하는 케일은 최한이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춤을 추는 것도 용납하지 못했다. 결국 케일은 매일 오후 정원에서 최한에게 왈츠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사교댄스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끄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공교롭게도 케일의 몸은 망나니였음에도 예법이나 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이 갑작스러운 소동 탓에 미뤄졌으니. 짝사랑하는 사람이 개가 된 게 나은지 짝사랑하는 사람과 춤추는 게 나은지는 차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눈동자에 저만을 담은 최한과 춤을 출 자신이 없었던 케일은 내심 다행이라 여겼다. 연회 하루 이틀 전에 최한을 되돌려서 몇 번 연습만 하면 될 거라고, 그리 안일하게 넘어가 버렸다.
“케일님.”
정말로, 세상만사가 전부 뜻대로 흘러갈 수는 없었다. 감정과 이성의 괴리에 케일은 결국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최한.”
“케일님. 나쁜 꿈이라도 꾸셨습니까?”
매서운 왜바람이 최한과 케일 사이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얇은 잠옷 차림으로 정원을 거닐던 케일은 파고드는 추위에 몸을 움츠렸다. 최한은 그 뒤에 붙어 개의 체온을 나누었다. 새벽에 갑자기 일어난 케일은 아무런 말도 없이 최한과 개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최한은 그것이 혹시 어떤 특별한 이유일까봐 가슴이 콩닥거렸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위태로운 케일의 뒤를 따라 네 발로 걷다 보니 서서히 두근거림도 가라앉았다. 늘 보던 뒷모습이었다. 전쟁에서도, 처음 그를 주웠을 때도, 개를 데리고 갔을 때도 케일은 저 등을 보여주었다. 이런 순간순간이 찾아오면 최한은 종종 한 발자국 다가가 그를 뒤돌아 세우고 싶었다. 이기적인 충동이었다.
최한은 케일 헤니투스를 사랑한다. 그건 분명 짝사랑이라 칭해야 할 감정이었다. 케일은 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고 세간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을 짝사랑이라 부르니까. 그 사실이 아프지는 않았다. 최한은 이미 짊어진 것 많은 케일이 자신의 감정까지 짊어지게 하긴 싫었다. 최한이 그의 그런 다정함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제가 있던 곳에 똑같이 쓰러져 있던 개를 주운 것이, 나는 언제든 너를 주워 가족을 안겨주겠다 하는 것 같아서. 새 가족이 생긴 최한은 이제 자신이 검은 개의 새 가족이 된다는 사실이 찬란하게 기뻤다. 그러니까 소매 사이로 언뜻 드러나는 당신의 흰 손목에 시선을 빼앗긴 적이 있노라고. 종종 일하는 당신의 목덜미를 그대로 물어뜯고 싶어진다고. 당신과 달리 저열한 사랑일 뿐이라고. 그렇게 고백할 수는 없었다. 만약 당신이 이 감정에서 반짝임을 발견한다면 그건 잘 갈린 칼날의 반사광이었다. 지금도 그는 케일의 손을 잡고 싶기보다는 발아래 짓밟힌 잡초를 질투해서 애꿎은 풀을 짓이기고 말았다. 맥없이 늘어진 풀이 이번에는 자신과 같아 보인 바람에, 최한은 괜히 서러워졌다.
“춤을 추자.”
케일의 목소리에 상념이 깨졌다. 하지만 최한은 멍하니 눈을 깜빡이는 것 말고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연회의 파트너로 가겠다고 손을 들었을 때도 최한은 자신의 심장 소리만이 너무 크게 들렸다. 마치 그때처럼 멀뚱멀뚱 서있자 케일이 최한을 앉히고 앞발을 붙잡았다. 그리고 조용히 눈꺼풀을 닫았다. 나뭇가지가 쓸려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마른 풀이 헤쳐지고 유리창이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빙글거리는 세상 속에서 서로 손을 잡고 있으니 이대로 제 몸도 함께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아, 춤을 추고 있었다. 최한이 슬쩍 눈을 뜨자 케일의 머리카락이 가는 실처럼 하늘을 수놓았다. 붉다. 온 세상이 마냥 붉었다.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케일은 일그러진 얼굴로 웃었다.
최한은 그의 입을 막고 싶었다. 그 한마디를 차마 듣고 싶지 않아서 차라리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케일은 담담히 입술을 움직였다.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제 것 같지 않아도 말해야 했다. 제가 잡은 앞발은 최한이지만, 최한이 아니었으니까. 케일은 그의 최한이 보고 싶었다.
“나를 사랑하지 마.”
그렇게 마침내 고백이 흘러나왔다.
첼로가 멎었다.
봄의 종말. 해일이 몰려와 그들 사이에 새겨진 두터운 선이 바닷물에 쓸려 내려갔다. 케일은 심해에 가라앉아 한껏 숨을 참았으나 최한은 그저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자신이었다.
“……케일님. 울지 마세요.”
이어진 한 마디야말로 종지부를 찍었다. 울다니? 누가? 네가 우는 게 아니고? 그리 반문하고 싶은 것과는 반대로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내 미적지근한 물방울이 턱을 타고 내려가 손등을 적셨다. 그제야 이 파도가 누구의 것인지 깨달았다. 잔물결에 희게 일어난 거품마저 오로지 나였다. 방파제를 무너트린 것은 최한이 아니었다. 케일이 뻣뻣하게 굳자 그가 일어나 머리를 턱 얹었다. 그리고는 쓰다듬는지 두드리는지 모를 몸짓으로 케일을 달랬다. 케일의 손길을 똑 닮았다. 어이가 없어진 케일은 그냥 최한을 끌어안아 버렸다. 저와 달리 뜨거운 몸이었다. 굳이 개가 아니더라도 최한은 항상 케일보다 온도가 높았다. 지금은 그 따뜻함에 기대 변명하고 싶었다. 나는 결국 너를 울리지도 못했는데 뭐가 좋다고 이러는 거야. 중얼거린 마음이 그에게 들렸을 리도 없는데, 최한은 갑자기 케일의 볼을 핥았다.
개가 되고 나서도 그는 항상 사람처럼 굴었다. 네 발로 뛰더라도 이렇게 가깝게 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 갑작스러움에 케일이 멈칫하자 개는 몸을 부르르 털기 시작했다. 검은 털이 갈기처럼 휘날렸다. 그리고…… 부엌 쪽으로 뛰어 가버렸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덩그러니 남겨진 케일은 허, 하고 헛웃음을 흘리다가 거칠게 몸이 돌려졌다. 최한은 그대로 케일에게 입 맞췄다. 입술과 입술이 마주치자 알아챘다. 최한은 이미 울고 있었다. 다만 울음을 터트린 건 그가 아니었다. 검은 개가 흘린 눈물이 그대로 최한의 눈물이 되어 떨어졌다. 처음부터 케일이 울려야 할 이는 최한이 아니었던 셈이다. 더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은 에르하벤을 향한 원망이 튀어나왔다. 분명 고의였을 것이다.
그러나 최한은 검은 개가 왜 울었는지 알고 있었다. 검은 개와 최한은 서로의 영혼을 닮아가고 있었다. 최한은 종종 마구 뛰어놀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고, 검은 개는 케일을 쫓아다니기 바빴다. 결국 검은 개는 케일을 따라 울고 만 것이다. 최한의 감정을 가져와 버려서.
“케일님이 우시면 저도 슬픕니다.”
거짓말이다. 최한은 지금 누구보다 기뻐하고 있었다. 최한은 달게 케일의 눈물을 훔쳤다.
요 며칠 최한은 항상 케일의 옆에 붙어 있을 수 있었다. 특별히 일이 없는데도 그와 함께 있고 귀여움받는다는 건 아주 달콤한 일상이었지만, 케일이 모든 최한을 가지진 못한 만큼 최한도 모든 케일을 가질 수는 없었다. 버려진 이들을 거뒀기에 시작된 사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모든 사람이 자신이기를 바라게 되고 말았다. 애초부터 자신이 너무 불리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서로 살아가는 시간도 다르고, 서로 살아온 세계도 다르고. 나의 가장 깊은 곳엔 당신이 있는데 그의 가장 깊은 곳엔 누가 있는지 알 수 없어서,
“……차라리 이대로 개가 되어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그럼 당신이 매일 나를 쓰다듬어줄 텐데.
같은 침대에 누워도 그저 일상일 텐데.
내가 당신보다 먼저 눈을 감을 텐데.
최한은 목에서 툭툭 목줄을 풀어 케일에게 쥐여 주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을 다시 제 손으로 덮었다. 애정 어린 손짓이었으나 속박이었다. 최한이 건넨 것도 그런 부류의 물건이었다. 받아들인 순간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최한을 책임져야 하는 종신 계약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책임지고 저를 길러주세요.”
케일님. 최한은 울음을 참지 못하고 흐윽, 소리를 내었다. 늦겨울 공기에 말라죽은 잡초가 시야에 들어왔다. 케일은 조용히 최한의 턱을 잡고 들어 올렸다. 서툰 키스와도 같이 눈과 눈이 마주치자 금세 숨이 들이켜졌다. 천천히, 겹쳐진 손이 하얀 목으로 향했다. 케일은 서투르게 제 머리색과 같은 것을 목에 찼다. 흥건히 젖은 얼굴과 달리 그 목소리는 메말랐고 어투는 무덤덤했지만, 속내를 찢어서 끄집어 올려낸 탓에 거칠기 그지없었다.
그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최한,
나는 사랑을 하는 데 서투르다.
내 감정은 절대 평온하지 않으며,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지도 못해.
“그러니까 날 줄게.”
내 전부를 헤집어서 그게 사랑이면 씹어 삼켜.
검은 개는 밤하늘의 끝자락을 닮았다. 은하수가 흐르지 않아 눈동자는 심연보다 까맣고, 윤기 없이 거친 털은 폭풍우의 구름이었다. 케일은 악몽조차 쫓아버릴 것처럼 날카롭게 이빨을 드러내는 개가 최한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최한은 케일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케일은 간지러운 게 목인지 아니면 가슴인지 잘 분간이 되질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저를 가진 최한마저 오로지 자신의 것이었으니까.
해가 올라와 한낮이 되면 둘은 다시 정원에 설 테다. 케일의 최한은 그의 몸을 단단히 잡았다. 그리고 최한의 케일은 그를 안고 느릿하게 스텝을 밟았다. 내리쬐는 햇볕도 지쳐 떨어지면 다 같이 침대에 누워 이불 덮인 섬에서 표류하고, 그렇게 또 날이 밝아 연회에 나가면 마침내 왕세자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일은 어디서 키스를 해야 가장 눈에 잘 띌까 고민했다. 스캔들이 터지자마자 잠적하면 볼만할 테다. 뭐 어쩌겠는가. 너무 사랑해서 그랬다는데. 그러게 진즉에 백수 한다니까.
하여간 질투심 많은 사랑이란 이토록 귀여운 법이었다.









